대운이 들어오기 전 내 사례는?

인생을 살다 보면 운세에 관심을 두게 되는 이유가 커지는데, 그게 바로 주기가 있다는 걸 체감해서가 아닐까?

따로 사주를 공부한 건 아니지만, 평소 고전 문헌이나 병법을 좋아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주와 닿는 부분이 생겼다. 사주와 병법 모두 천문을 근간으로 한다고 들었다.

내 경우, 과거를 돌아보니 2017년이 대운이 들어온 시기라고 생각 되는 이유가 그때 큰 돈이 들어왔다. 그 당시에는 내가 그 전에는 7년 사귄 여자친구랑 결혼 자금 모으려고 그렇게 노력을 해도 안 모이던 돈이 여자친구랑 헤어지고 나서 수개월 만에 큰 돈이 모여버려서 인생의 허탈함을 느낀적이 있고.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당시 여자친구한테 다시 연락오면 다시 만나서 결혼 하자고 하려고 했는데 연락이 오지는 않았다. 뭐 다 차단한것도 있지만, 연락 하려면 친구 번호로 전화 하거나 방법은 많았겠지만, 그리고 1년 좀 넘어서 결혼 한걸 알게되었을 때는 항상 느끼지만 떠난 여자는 붙잡는게 아닌게 맞다는 걸 알게 됨.

대운 들어오기 전: 2016년 이전

  1. 6년 다니던 회사에서 강제 퇴사
  2. 그다음 대기업 정규직으로 들어간 회사도 1년도 안 되 강제 퇴사
  3. 결혼할 줄 알았던 7년을 사귀던 한국 여자친구와 헤어짐
  4. 치질이 심해졌는데 수술하라고 해서 날짜 까지 잡았으나 안 하고 지금 까지 잘 삼. 그 병원 수술로 먹고 사는 병원 같아서.
  5. 두통이 심해짐

대운이 들어온 시기: 2017년

내가 2017년을 대운이라고 생각한 이유는 명확했다.

  1. 1년 만에 짤린 회사는코스닥 상장을 준비 중이었는데, 신기하게도 내가 스톡옵션 받는 끝번이었고, 대표님이 직접 주식을 주셨다. 양도 주식이었다. 스톡옵션은 싸게 사는 건데, 이건 나한테 직접 주식을 양도하는건데, 세금 진짜 많이 냈다. 이게 상장하면서 비상장주식이 상장주로 되면서 110배 정도로 뻥튀기가 됨. 상장은 정말 넘사벽이다.
  2. 비트코인이 800만 원일 때 3개를 샀다. 10% 빠지자 알트코인 트레이딩으로 전환해서 약 8,000만 원을 벌었다. 하지만 나중에 2,000만 원 정도는 물렸고, 대부분의 코인은 사라졌지만 그중 ZKM이라는 코인이 코로나 때 500만 원까지 올랐었다. 총 1,500만 원 손실이었는데, 당시엔 국내 맛집·여행 블로그를 하느라 시장을 제대로 모니터링하지 못했다.
  3. 코스닥 상장과 알트코인 수익으로 2년 6개월 동안 여행을 다니며 일하지 않고 놀았다. 카드 사용 내역을 보니 한 달에 500만 원씩 썼다.
  4. 2년 6개월 띵가 띵가 놀다가 돈도 떨어져 갈 무렵에 억대 연봉 지인이 엄청 날 갈궈서 알바와 블로그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 당시 알바 시급도 좋아다. 한화의 파워가 강세이기도 했고. 특히 코로나 시기는 블로그 협찬의 르네상스였다. 협찬 건수를 보니 많을 땐 연 460건, 적을 땐 320건 정도였다. 하루에 3개씩 리뷰를 써야 할 정도였다. 피크 시간엔 회장님의 지인 레스토랑 리뷰, 해외 미슐랭 3스타 셰프 가게 리뷰까지 다녔다. 투뿔 한우는 한 달에 2~3번씩 다니고, 수익 없이도 풍족한 삶을 살았다. 나중에 알았지만 월 2,000만 원은 벌어야 그런 생활이 가능했다. 지인이랑 해외 여행 가기 전날에는 하루 종일 리뷰 쓰고 새벽 4시까지도 리뷰 쓰다가 비행기 타서 잠을 청하고도 했는데 ,그랬던 이유가 리뷰를 11개까지 쓴 적이 있다.
  5. 여행도 많이 다닐 땐 1년에 4개월을 해외에 있었다.
  6. 이후 직장은 2곳 중 선택이 했어야 했는데. 하나는 평창 동계올림픽 시작 4년 전, 은사님이 함께 일하자고 했는데, 그분이 당시 올림픽 조직위원이었다. 그러나 내가 선택 한건 또 다른 은사님이 유럽계 한국 지사 회사를 운영하셨는데, 여기서 일하라고 해서 결정을 내렸다. 알바처럼 일했지만 돈을 정말 많이 받았다. 지금 10년이 다 되어가는데, 현재 최저 시급은 그때의 절반도 안 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 때도 행복했다. 이 때 제주도 공사 때문에 일본계 호텔에서 한달 넘게 살았는데, 통유리라 아침에 일어나서 커튼을 치면 제주 바다가 보였다. 그리고 아침은 호텔 조식으로 매일 먹었다.
  7. 이 시절 우리 집안 친척이 대기업 총수 집안인 걸 알았다. 물론 오래전에 연락이 끊겼지만. 그 회사가 평창 올림픽 관련 일이 있어서 미팅을 했는데, 당시 주가가 낮아서 나한테는 중소기업 느낌이었다. 지금은 황금주 회사다. 비딩에 참여했지만 친척인 걸 굳이 말하지 않았다. 여하튼 친척이라고 하고 돈은 잘 버니 뭐라 못 하겠다. 여하튼 이 집안은 북한에서 내려왔는데, 할아버지가 우리 집안 족보에 넣어 주셨다고 했다.내가 추측하기로는 그 당시 북한에서 내려왔으면 연고가 없으면 빨갱이로 잡혀가던 시절이라 그런 것 같다. 나중에 들었지만 족보를 맞춰 봤더니 맞다고 해서 넣어 주신 거였다. 그 당시 우리 친할아버지는 전북에서 가장 큰 농장 소유에 병원도 짓고, 독일인 의사도 개인적으로 기부를 해서 그 당시 주치의가 독일인 의사였다고 들었음. 나중에 독일 들어가고 나서도 할머니한테 전화 왔었다고 전해 들음.
  8. 내가 비트코인 입문 한건 친한 동생이 있는데 미국 금융권에서 일한다. 이 친구가 비트코인 70만원 일때 나한테 사두라고 연락이 왔다. 그런데 그 당시에는 돈이 없었고, 800만원일 때 3개를 산거다. 그 이후는 위에 적어 났고, 그 다음 내가 체굴을 하려고 했었는데, 친구의 친구가 그 당시 2만개 비트코인을 들고 있었는데, 피자 배달 시절에 사둔거라고 들었고. 미국에서는 왕처럼 살고 있다고 들었는데 그 친구가 내가 채굴기를 돌리면 자기도 돌리고 싶다고 해서 나한테 맞기고 돈을 투자 하겠다는 거였는데, 그 당시 친척이 큰 공장을 운영하기에 몇대 좀 돌려 보려고 했는데 잘 되지는 않았는데. 그 때 비트코인 가격이 4천만원 찍고 500만원에서 700만원 시절이었던걸로 기억. 그 때 채굴기 사장들이 중고 채굴기를 쌍끌이를 하는 걸 보고 내가 바닥이란 걸 알았거든. 여하튼 그 때 매형 공장에서 못 돌린 건 아쉬운데, 이렇게 큰 기회들이 다가온다.
  9. 아비트리지 거래, 김치 프리미엄이 심했을 때는 하루에 20만원에서 30만원 정도 벌기도 했다. 그런데 미국 지인이랑 같이 한거라 미국 지인의 세금 까지 고려해서 반이상을 뛰어간 후 금액이다. 만약 나 혼자 프로그램 돌렸다면 일 100만원도 가능했을거다. 이건 지금도 가능하다고 하는데, 대신 프로그램 매매에 선물로 헷지 하고 억대로 돌려서 한 건데 몇백씩 챙긴다고는 들었는데, 지금의 나는 못하지만 방법이 없는 건 아님.

현재: 2026년 (대운 전 그림자 시기일지는 모르겠으나)

지금의 나를 스스로 히키코모리라고 부른다. 과거의 대운과는 달라 보이지만, 이것도 새로운 대운의 전조인지도 모른다.

  1. 더 이상 블로그 협찬을 하지 않는다. 살이 너무 찌는 것도 있고, 협찬을 받으려면 내 몸이 한국에 있어야 했다. 그게 나한테는 족쇄였다. 해외 장기로 있다보면 해외에서도 돈을 벌 수 있는 게 필요한데, 가장 좋은 건 여행 유튜브다. 그러나 나는 여행 유튜브는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더 절실해야 하는걸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됨. 해외 다니면서 그 수많은 호텔을 다녔는데, 그거 다 블로그에 올렸으면 그것도 꽤 많은 자산이 되었을 텐데 그것도 안하고 지금 생각해 보면 놓친 게 많다.
  2. 대한민국 환율이 박살 나면서 알바 시급으로는 여행 가기가 힘들어졌다. 물론 해외 물가도 올랐다.
  3. 최근 2년 동안 노마드 수익으로 해외에서도 합법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파이프라인을 계속 시도 중이다. 아직 수익은 나지 않고 미미하다.
  4. 돈이 없고 집에만 있으니 친구 연락이 다 끊겼다. 한국에서는 친구가 없다.
  5. 연락하는 친구들은 미국, 중국, 헝가리, 사우디, 러시아 친구들뿐이다. 한국 친구는 한 명 남았는데 아이가 3명이라 밥 먹기도 힘들다. 그 외엔 아무도 연락하며 지내는 사람이 없다.
  6. 일반적으로 말하는 직업, 환경, 만나는 사람이 다 비어지는 중이다.
  7. 매일 AI로 기존에 하던 일을 보완하거나 새로운 것을 만들면서 개선과 개발을 반복한다.
  8. 2000년 버블 닷컴 시절 창업했던 경험과 지금을 비교해 보면, 그때의 버블과 지금의 버블은 다르다. 그때는 상장 버블이 심했다. 기업이 상장하면 시총이 생기는데 그게 허상이었다. 25배 PER을 한다면 25년을 이윤이 나야 시총이 나온다. 지금은 상장 버블이 아니다. 이미 기업은 있는데 들어가는 돈만큼 실제 수익이 나지 않아서 버블이라고 한다. 내가 회사를 다니지도, 개발자도 아니지만, 이미 1인 게임 개발자들이 혼자 개발해서 돈을 버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건 마치 애플의 아이폰이 나오고 팀 쿡이 만든 아이튠즈에 게임 카테고리가 생길 때와 비슷하다. 그때도 개발자가 혼자 탱크 게임을 만들어서 월 3,000만 원을 찍어서 유명했던 적이 있다. 약간 그런 느낌이다. 이게 오래 살아야 비교가 가능하다.
  9. 지금은 만나는 사람도 없고 시간이 많아서 운동은 전혀 하지 않지만, 아침에는 좌천스러운 밀교 명상을 하고, 고대 팔리어로 쓰인 불경을 번역해서 읽고, 병법도 공부하고, 나머지 시간엔 해외에서도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는 것들을 시도 중이다.
  10. 어릴 땐 일부러 사람을 거르지 않았는데, 이제는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거른다. 나는 미래를 위해 이렇게 산다고 말해도 “으쌰으쌰” 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예를 들어 가까운 지인이 있는데 내가 모든 걸 설명해도 2개월 후엔 다 까먹고 그냥 일하라고 말한다. 이런 사람들은 상대방에 대한 기억도 관심도 없다. 아니면 조기 치매거나. 시간 낭비라고 생각되니 거리를 둔다. 나중에 느끼지만, 이런 류와 시간을 얽히면 운이 지나가는 느낌이 든다.
  11. 인터넷에 “친구 5명의 평균 급여가 내 급여가 된다”는 말이 있다. 어릴 땐 좋아하지 않았는데 나이 들면서 느낀다. 정말 그렇다. 지금은 친구가 없어도 밥 같이 먹는 지인이 한 명 있는데 연봉이 약 2억 정도다. 이분은 내가 여행에 입문시킨 지인인데, 나는 알바생이라 쌀 때 최소 비용으로 오래 버티고 오는데 지인은 반대다. 비싼 성수기에 비싼 곳에 가서 놀다 온다. 그런데 나를 데리고 가면서 비행기값, 숙소값, 용돈까지 준다. 돈이 직접 들어오진 않지만 내 연봉이 올랐을 때의 혜택을 누린다. 내 돈으로 여행도 다니지만 이렇게 여행도 가면 1년에 2번은 더 간다. 그런데 이번 대운에는 이 지인도 거리를 두게 되었다. 내가 해외에서 합법적으로 해야 할 일로 전환한다고 말해도 1달 후엔 헛소리를 해서 차단했다. 여행을 데려간 건 좋았지만, 사실 혼자 갈 땐 내 스케줄로 진행하면 여행의 재미가 100%라면 지인이랑 가면 40~60%로 떨어진다. 까탈스럽기도 했고, 나는 새로운 여행지와 현지인을 만나는 걸 좋아해서 유튜브로 현지 언어도 공부해서 직접 말하는데, 지인은 그런 노력이 없다. 내가 현지인 친구들을 만나면서 놀러 다니는 걸 보고 부러워하면서도 그 방법을 배우지 않는다. 나도 불만인데 지인은 내가 자기를 데려다 주면 나도 그렇게 해주기를 바란다. 내 능력이 넘사벽인 걸 알면서도. 내가 촉도 좋고 비위도 잘 맞추다 보니 그렇게까지 맞춰 주는 사람도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사람을 만나는 데 가장 중요한 건 상대가 싫어하는 짓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나는 이걸 몇 년 전에 알았다. 상대가 싫어하는 걸 안 하면 그 사람과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여하튼 친하고 도움을 많이 줬던 사람도 이렇게 대운이 들어오면 떠난다. 그래서 어떤 스님이 “친구가 떠나면 인연이 다했다”고 했는데, 그 말이 좋더라. 어차피 해외엔 새로운 친구가 넘친다.
  12. 결혼하려 했던 친구를 헤어진 후 다음에 만난 사람은 종합병원 의사 여자친구였다. 신기하게도 내가 아는 지인의 전 여친의 친구였다. 이바닥이 좁은가 싶다.
  13. 해외에 살게 된 이유는 해외 여자친구 때문이었다. 결혼하고 싶어서 그 쪽 부모님 허락도 받았다. 여행 오면 호텔이 비싸니 집을 구하라고 해서 원룸을 구했는데, 자연스럽게 동거가 되었다. 그런데 동생들도 와서 자고, 기타도 치고, 미성년자인데 맥주도 함께 마셨다. 어느 날 해외 여친 지인의 여동생이 학교에서 문제가 생겼는데, 부모님이 일 때문에 못 가니 장녀인 여친이 학교에 가자고 했고 나도 함께 갔다. 담당 고등학교 선생님이 당황해하며 차분하게 말했지만 속으로 화나 있는 게 느껴졌다.
  14. 결론은 여행 다니다가 결혼하고 싶은 외국 여자를 만났고, 해외에서 장기 거주하며 동거했지만 코로나 때문에 입국을 못하면서 자연스럽게 헤어졌다. 그래도 그때 정말 행복했다. 잊지 못한다. 이건 해외 연행을 못 해봤으면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15. 여하튼 지금 성과는 없지만 해외를 다니면서 22개국 여성을 만났다.
  16. 요즘은 외모 관리를 안 해서 몸무게가 104kg이다. 생각해 보면 내 영혼은 그대로인데, 지금 살찌고 못 생겼다고 안 만나면 그건 내 외모를 따지는 게 아닐까? 몸매 좋고 얼굴 예쁜 여자들도 남자들이 자신의 몸만 사랑한다고 하는데 나도 같은 주장을 하는 것 아닐까? 사랑은 영혼이 아니라 몸끼리의 사랑 아닐까? 이를 돌파하려면 해외에서 사례를 만들면 된다. 지구 인구 66억 중 한국인에서 내가 만날 수 있는 여성이 몇 %일까? 0.05% 미만일 거다. 인생 살면서 5%까지만 경우의 수를 늘려봐라. 세상이 달라 보일 거다.
  17. 집의 물건들이 고장 난다. 컴퓨터 보드, 파워가 고장, 거실 전등, 안방 전등, 에어콘까지 최근에 고장 났다. 안 나던 게 연쇄적으로 고장 난다.
  18. 안하던 집 청소를 하게 된다.
  19. 집안의 물건을 버린다. (사주나 무당들도 안 쓰는 물건, 중고 물건, 고장난 시계 같은 것들을 버리라고 한다.)
  20. 풍수를 신경 쓰게 된다. 우리 집 대문 방향이 귀문인 줄 몰랐다. 개인적으로 공부해서 풍수로 대처했다. 가장 좋은 건 이사다. 다음에 이사할 땐 풍수도 고려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집을 좋아한 이유는 전에 알바하던 곳과 거리가 가까워서였다. 편도 26분이다.
  21. 몇 개월 동안 기력이 없어고 그냥 쉬고 싶어서 집에만 오면 계속 누워 있었다.
  22. 이유 없이 몸이 아픈데, 한달 동안 병원 다니면서 MRI 까지 정형외과, 신경외과, 한의원 다녀봐도 다들 정상이라고 한다. 소염진통제만 잔뜩 받아서 먹었다. 사실 근본 치료가 된 건 아닌데 시간이 지나니깐 귀신같이 사라진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지금 아픈 부위랑 통증이 과거 대운 오기전에도 비슷했던 기억이 난다. 그 때도 두통이 지금이랑 비슷해서 한의원에서 침 맞았던 기억이 나는데, 그 때나는 업무 스테레스로 생각 했는데, 지금은 일도 안하는데 통증이 비슷하게 있다는 건 몸에 이상이 있다는 건데, 병원에서는 정상이라고 하니 그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23. 분쟁이 많이 생긴다. 노동법 진정으로 다툼을 매년 한다.
  24. 이번에 집 주인이랑 임대차 분쟁위원회 분쟁을 준비 중이다.
  25. 지금 내가 도전하고 있는 파이프라인은 여러가지인데, 공개는 안하려고 한다. 돈 벌면 이제는 조용히 해외 나가서 히끼꼬모리 하려고 한다.

겪어보니

대운인지 아닌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주기는 있다는 건 체감으로 느낄 뿐이다. 그리고 이런 걸 안다면 힘들 때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마음이 편안해 지니 기계적으로 대응을 하면 된다. 그런데 매일 내가 그리는 건 해외 돌아다니면서 살면서 조지아에서 세금 좀 덜 내면서 살거나, 노을이 멋진 곳에서 지내는 걸 생각해 본다. 그런데 집에서 일 안하고 누워 있는 것도 나쁘지 않긴 하다. 히끼꼬모리도 나쁘지 않긴해.

내 인생 목표

내 수익의 99%는 기부하면 살아보기

내 장례식장에서 펑펑 울어주는 여인들에게 1억원씩 주기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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