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운이 들어오기 전 내 사례는?

인생을 살다 보면 운세에 관심을 두게 되는 이유가 커지는데, 그게 바로 주기가 있다는 걸 체감해서가 아닐까?

따로 사주를 공부한 건 아니지만, 평소 고전 문헌이나 병법을 좋아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주와 닿는 부분이 생겼다. 사주와 병법 모두 천문을 근간으로 한다고 들었다.

내 경우, 과거를 돌아보니 2017년이 대운이 들어온 시기라고 생각 되는 이유가 그때 큰 돈이 들어왔다. 그 당시에는 내가 그 전에는 7년 사귄 여자친구랑 결혼 자금 모으려고 그렇게 노력을 해도 안 모이던 돈이 여자친구랑 헤어지고 나서 수개월 만에 큰 돈이 모여버려서 인생의 허탈함을 느낀적이 있고.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당시 여자친구한테 다시 연락오면 다시 만나서 결혼 하자고 하려고 했는데 연락이 오지는 않았다. 뭐 다 차단한것도 있지만, 연락 하려면 친구 번호로 전화 하거나 방법은 많았겠지만, 그리고 1년 좀 넘어서 결혼 한걸 알게되었을 때는 항상 느끼지만 떠난 여자는 붙잡는게 아닌게 맞다는 걸 알게 됨.

대운 들어오기 전: 2016년 이전

  1. 6년 다니던 회사에서 강제 퇴사
  2. 그다음 대기업 정규직으로 들어간 회사도 1년도 안 되 강제 퇴사
  3. 결혼할 줄 알았던 7년을 사귀던 한국 여자친구와 헤어짐
  4. 치질이 심해졌는데 수술하라고 해서 날짜 까지 잡았으나 안 하고 지금 까지 잘 삼. 그 병원 수술로 먹고 사는 병원 같아서.
  5. 두통이 심해짐

대운이 들어온 시기: 2017년

내가 2017년을 대운이라고 생각한 이유는 명확했다.

  1. 1년 만에 짤린 회사는코스닥 상장을 준비 중이었는데, 신기하게도 내가 스톡옵션 받는 끝번이었고, 대표님이 직접 주식을 주셨다. 양도 주식이었다. 스톡옵션은 싸게 사는 건데, 이건 나한테 직접 주식을 양도하는건데, 세금 진짜 많이 냈다. 이게 상장하면서 비상장주식이 상장주로 되면서 110배 정도로 뻥튀기가 됨. 상장은 정말 넘사벽이다.
  2. 비트코인이 800만 원일 때 3개를 샀다. 10% 빠지자 알트코인 트레이딩으로 전환해서 약 8,000만 원을 벌었다. 하지만 나중에 2,000만 원 정도는 물렸고, 대부분의 코인은 사라졌지만 그중 ZKM이라는 코인이 코로나 때 500만 원까지 올랐었다. 총 1,500만 원 손실이었는데, 당시엔 국내 맛집·여행 블로그를 하느라 시장을 제대로 모니터링하지 못했다.
  3. 코스닥 상장과 알트코인 수익으로 2년 6개월 동안 여행을 다니며 일하지 않고 놀았다. 카드 사용 내역을 보니 한 달에 500만 원씩 썼다.
  4. 2년 6개월 띵가 띵가 놀다가 돈도 떨어져 갈 무렵에 억대 연봉 지인이 엄청 날 갈궈서 알바와 블로그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 당시 알바 시급도 좋아다. 한화의 파워가 강세이기도 했고. 특히 코로나 시기는 블로그 협찬의 르네상스였다. 협찬 건수를 보니 많을 땐 연 460건, 적을 땐 320건 정도였다. 하루에 3개씩 리뷰를 써야 할 정도였다. 피크 시간엔 회장님의 지인 레스토랑 리뷰, 해외 미슐랭 3스타 셰프 가게 리뷰까지 다녔다. 투뿔 한우는 한 달에 2~3번씩 다니고, 수익 없이도 풍족한 삶을 살았다. 나중에 알았지만 월 2,000만 원은 벌어야 그런 생활이 가능했다. 지인이랑 해외 여행 가기 전날에는 하루 종일 리뷰 쓰고 새벽 4시까지도 리뷰 쓰다가 비행기 타서 잠을 청하고도 했는데 ,그랬던 이유가 리뷰를 11개까지 쓴 적이 있다.
  5. 여행도 많이 다닐 땐 1년에 4개월을 해외에 있었다.
  6. 이후 직장은 2곳 중 선택이 했어야 했는데. 하나는 평창 동계올림픽 시작 4년 전, 은사님이 함께 일하자고 했는데, 그분이 당시 올림픽 조직위원이었다. 그러나 내가 선택 한건 또 다른 은사님이 유럽계 한국 지사 회사를 운영하셨는데, 여기서 일하라고 해서 결정을 내렸다. 알바처럼 일했지만 돈을 정말 많이 받았다. 지금 10년이 다 되어가는데, 현재 최저 시급은 그때의 절반도 안 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 때도 행복했다. 이 때 제주도 공사 때문에 일본계 호텔에서 한달 넘게 살았는데, 통유리라 아침에 일어나서 커튼을 치면 제주 바다가 보였다. 그리고 아침은 호텔 조식으로 매일 먹었다.
  7. 이 시절 우리 집안 친척이 대기업 총수 집안인 걸 알았다. 물론 오래전에 연락이 끊겼지만. 그 회사가 평창 올림픽 관련 일이 있어서 미팅을 했는데, 당시 주가가 낮아서 나한테는 중소기업 느낌이었다. 지금은 황금주 회사다. 비딩에 참여했지만 친척인 걸 굳이 말하지 않았다. 여하튼 친척이라고 하고 돈은 잘 버니 뭐라 못 하겠다. 여하튼 이 집안은 북한에서 내려왔는데, 할아버지가 우리 집안 족보에 넣어 주셨다고 했다.내가 추측하기로는 그 당시 북한에서 내려왔으면 연고가 없으면 빨갱이로 잡혀가던 시절이라 그런 것 같다. 나중에 들었지만 족보를 맞춰 봤더니 맞다고 해서 넣어 주신 거였다. 그 당시 우리 친할아버지는 전북에서 가장 큰 농장 소유에 병원도 짓고, 독일인 의사도 개인적으로 기부를 해서 그 당시 주치의가 독일인 의사였다고 들었음. 나중에 독일 들어가고 나서도 할머니한테 전화 왔었다고 전해 들음.
  8. 내가 비트코인 입문 한건 친한 동생이 있는데 미국 금융권에서 일한다. 이 친구가 비트코인 70만원 일때 나한테 사두라고 연락이 왔다. 그런데 그 당시에는 돈이 없었고, 800만원일 때 3개를 산거다. 그 이후는 위에 적어 났고, 그 다음 내가 체굴을 하려고 했었는데, 친구의 친구가 그 당시 2만개 비트코인을 들고 있었는데, 피자 배달 시절에 사둔거라고 들었고. 미국에서는 왕처럼 살고 있다고 들었는데 그 친구가 내가 채굴기를 돌리면 자기도 돌리고 싶다고 해서 나한테 맞기고 돈을 투자 하겠다는 거였는데, 그 당시 친척이 큰 공장을 운영하기에 몇대 좀 돌려 보려고 했는데 잘 되지는 않았는데. 그 때 비트코인 가격이 4천만원 찍고 500만원에서 700만원 시절이었던걸로 기억. 그 때 채굴기 사장들이 중고 채굴기를 쌍끌이를 하는 걸 보고 내가 바닥이란 걸 알았거든. 여하튼 그 때 매형 공장에서 못 돌린 건 아쉬운데, 이렇게 큰 기회들이 다가온다.
  9. 아비트리지 거래, 김치 프리미엄이 심했을 때는 하루에 20만원에서 30만원 정도 벌기도 했다. 그런데 미국 지인이랑 같이 한거라 미국 지인의 세금 까지 고려해서 반이상을 뛰어간 후 금액이다. 만약 나 혼자 프로그램 돌렸다면 일 100만원도 가능했을거다. 이건 지금도 가능하다고 하는데, 대신 프로그램 매매에 선물로 헷지 하고 억대로 돌려서 한 건데 몇백씩 챙긴다고는 들었는데, 지금의 나는 못하지만 방법이 없는 건 아님.

현재: 2026년 (대운 전 그림자 시기일지는 모르겠으나)

지금의 나를 스스로 히키코모리라고 부른다. 과거의 대운과는 달라 보이지만, 이것도 새로운 대운의 전조인지도 모른다.

  1. 더 이상 블로그 협찬을 하지 않는다. 살이 너무 찌는 것도 있고, 협찬을 받으려면 내 몸이 한국에 있어야 했다. 그게 나한테는 족쇄였다. 해외 장기로 있다보면 해외에서도 돈을 벌 수 있는 게 필요한데, 가장 좋은 건 여행 유튜브다. 그러나 나는 여행 유튜브는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더 절실해야 하는걸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됨. 해외 다니면서 그 수많은 호텔을 다녔는데, 그거 다 블로그에 올렸으면 그것도 꽤 많은 자산이 되었을 텐데 그것도 안하고 지금 생각해 보면 놓친 게 많다.
  2. 대한민국 환율이 박살 나면서 알바 시급으로는 여행 가기가 힘들어졌다. 물론 해외 물가도 올랐다.
  3. 최근 2년 동안 노마드 수익으로 해외에서도 합법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파이프라인을 계속 시도 중이다. 아직 수익은 나지 않고 미미하다.
  4. 돈이 없고 집에만 있으니 친구 연락이 다 끊겼다. 한국에서는 친구가 없다.
  5. 연락하는 친구들은 미국, 중국, 헝가리, 사우디, 러시아 친구들뿐이다. 한국 친구는 한 명 남았는데 아이가 3명이라 밥 먹기도 힘들다. 그 외엔 아무도 연락하며 지내는 사람이 없다.
  6. 일반적으로 말하는 직업, 환경, 만나는 사람이 다 비어지는 중이다.
  7. 매일 AI로 기존에 하던 일을 보완하거나 새로운 것을 만들면서 개선과 개발을 반복한다.
  8. 2000년 버블 닷컴 시절 창업했던 경험과 지금을 비교해 보면, 그때의 버블과 지금의 버블은 다르다. 그때는 상장 버블이 심했다. 기업이 상장하면 시총이 생기는데 그게 허상이었다. 25배 PER을 한다면 25년을 이윤이 나야 시총이 나온다. 지금은 상장 버블이 아니다. 이미 기업은 있는데 들어가는 돈만큼 실제 수익이 나지 않아서 버블이라고 한다. 내가 회사를 다니지도, 개발자도 아니지만, 이미 1인 게임 개발자들이 혼자 개발해서 돈을 버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건 마치 애플의 아이폰이 나오고 팀 쿡이 만든 아이튠즈에 게임 카테고리가 생길 때와 비슷하다. 그때도 개발자가 혼자 탱크 게임을 만들어서 월 3,000만 원을 찍어서 유명했던 적이 있다. 약간 그런 느낌이다. 이게 오래 살아야 비교가 가능하다.
  9. 지금은 만나는 사람도 없고 시간이 많아서 운동은 전혀 하지 않지만, 아침에는 좌천스러운 밀교 명상을 하고, 고대 팔리어로 쓰인 불경을 번역해서 읽고, 병법도 공부하고, 나머지 시간엔 해외에서도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는 것들을 시도 중이다.
  10. 어릴 땐 일부러 사람을 거르지 않았는데, 이제는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거른다. 나는 미래를 위해 이렇게 산다고 말해도 “으쌰으쌰” 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예를 들어 가까운 지인이 있는데 내가 모든 걸 설명해도 2개월 후엔 다 까먹고 그냥 일하라고 말한다. 이런 사람들은 상대방에 대한 기억도 관심도 없다. 아니면 조기 치매거나. 시간 낭비라고 생각되니 거리를 둔다. 나중에 느끼지만, 이런 류와 시간을 얽히면 운이 지나가는 느낌이 든다.
  11. 인터넷에 “친구 5명의 평균 급여가 내 급여가 된다”는 말이 있다. 어릴 땐 좋아하지 않았는데 나이 들면서 느낀다. 정말 그렇다. 지금은 친구가 없어도 밥 같이 먹는 지인이 한 명 있는데 연봉이 약 2억 정도다. 이분은 내가 여행에 입문시킨 지인인데, 나는 알바생이라 쌀 때 최소 비용으로 오래 버티고 오는데 지인은 반대다. 비싼 성수기에 비싼 곳에 가서 놀다 온다. 그런데 나를 데리고 가면서 비행기값, 숙소값, 용돈까지 준다. 돈이 직접 들어오진 않지만 내 연봉이 올랐을 때의 혜택을 누린다. 내 돈으로 여행도 다니지만 이렇게 여행도 가면 1년에 2번은 더 간다. 그런데 이번 대운에는 이 지인도 거리를 두게 되었다. 내가 해외에서 합법적으로 해야 할 일로 전환한다고 말해도 1달 후엔 헛소리를 해서 차단했다. 여행을 데려간 건 좋았지만, 사실 혼자 갈 땐 내 스케줄로 진행하면 여행의 재미가 100%라면 지인이랑 가면 40~60%로 떨어진다. 까탈스럽기도 했고, 나는 새로운 여행지와 현지인을 만나는 걸 좋아해서 유튜브로 현지 언어도 공부해서 직접 말하는데, 지인은 그런 노력이 없다. 내가 현지인 친구들을 만나면서 놀러 다니는 걸 보고 부러워하면서도 그 방법을 배우지 않는다. 나도 불만인데 지인은 내가 자기를 데려다 주면 나도 그렇게 해주기를 바란다. 내 능력이 넘사벽인 걸 알면서도. 내가 촉도 좋고 비위도 잘 맞추다 보니 그렇게까지 맞춰 주는 사람도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사람을 만나는 데 가장 중요한 건 상대가 싫어하는 짓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나는 이걸 몇 년 전에 알았다. 상대가 싫어하는 걸 안 하면 그 사람과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여하튼 친하고 도움을 많이 줬던 사람도 이렇게 대운이 들어오면 떠난다. 그래서 어떤 스님이 “친구가 떠나면 인연이 다했다”고 했는데, 그 말이 좋더라. 어차피 해외엔 새로운 친구가 넘친다.
  12. 결혼하려 했던 친구를 헤어진 후 다음에 만난 사람은 종합병원 의사 여자친구였다. 신기하게도 내가 아는 지인의 전 여친의 친구였다. 이바닥이 좁은가 싶다.
  13. 해외에 살게 된 이유는 해외 여자친구 때문이었다. 결혼하고 싶어서 그 쪽 부모님 허락도 받았다. 여행 오면 호텔이 비싸니 집을 구하라고 해서 원룸을 구했는데, 자연스럽게 동거가 되었다. 그런데 동생들도 와서 자고, 기타도 치고, 미성년자인데 맥주도 함께 마셨다. 어느 날 해외 여친 지인의 여동생이 학교에서 문제가 생겼는데, 부모님이 일 때문에 못 가니 장녀인 여친이 학교에 가자고 했고 나도 함께 갔다. 담당 고등학교 선생님이 당황해하며 차분하게 말했지만 속으로 화나 있는 게 느껴졌다.
  14. 결론은 여행 다니다가 결혼하고 싶은 외국 여자를 만났고, 해외에서 장기 거주하며 동거했지만 코로나 때문에 입국을 못하면서 자연스럽게 헤어졌다. 그래도 그때 정말 행복했다. 잊지 못한다. 이건 해외 연행을 못 해봤으면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15. 여하튼 지금 성과는 없지만 해외를 다니면서 22개국 여성을 만났다.
  16. 요즘은 외모 관리를 안 해서 몸무게가 104kg이다. 생각해 보면 내 영혼은 그대로인데, 지금 살찌고 못 생겼다고 안 만나면 그건 내 외모를 따지는 게 아닐까? 몸매 좋고 얼굴 예쁜 여자들도 남자들이 자신의 몸만 사랑한다고 하는데 나도 같은 주장을 하는 것 아닐까? 사랑은 영혼이 아니라 몸끼리의 사랑 아닐까? 이를 돌파하려면 해외에서 사례를 만들면 된다. 지구 인구 66억 중 한국인에서 내가 만날 수 있는 여성이 몇 %일까? 0.05% 미만일 거다. 인생 살면서 5%까지만 경우의 수를 늘려봐라. 세상이 달라 보일 거다.
  17. 집의 물건들이 고장 난다. 컴퓨터 보드, 파워가 고장, 거실 전등, 안방 전등, 에어콘까지 최근에 고장 났다. 안 나던 게 연쇄적으로 고장 난다.
  18. 안하던 집 청소를 하게 된다.
  19. 집안의 물건을 버린다. (사주나 무당들도 안 쓰는 물건, 중고 물건, 고장난 시계 같은 것들을 버리라고 한다.)
  20. 풍수를 신경 쓰게 된다. 우리 집 대문 방향이 귀문인 줄 몰랐다. 개인적으로 공부해서 풍수로 대처했다. 가장 좋은 건 이사다. 다음에 이사할 땐 풍수도 고려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집을 좋아한 이유는 전에 알바하던 곳과 거리가 가까워서였다. 편도 26분이다.
  21. 몇 개월 동안 기력이 없어고 그냥 쉬고 싶어서 집에만 오면 계속 누워 있었다.
  22. 이유 없이 몸이 아픈데, 한달 동안 병원 다니면서 MRI 까지 정형외과, 신경외과, 한의원 다녀봐도 다들 정상이라고 한다. 소염진통제만 잔뜩 받아서 먹었다. 사실 근본 치료가 된 건 아닌데 시간이 지나니깐 귀신같이 사라진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지금 아픈 부위랑 통증이 과거 대운 오기전에도 비슷했던 기억이 난다. 그 때도 두통이 지금이랑 비슷해서 한의원에서 침 맞았던 기억이 나는데, 그 때나는 업무 스테레스로 생각 했는데, 지금은 일도 안하는데 통증이 비슷하게 있다는 건 몸에 이상이 있다는 건데, 병원에서는 정상이라고 하니 그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23. 분쟁이 많이 생긴다. 노동법 진정으로 다툼을 매년 한다.
  24. 이번에 집 주인이랑 임대차 분쟁위원회 분쟁을 준비 중이다.
  25. 지금 내가 도전하고 있는 파이프라인은 여러가지인데, 공개는 안하려고 한다. 돈 벌면 이제는 조용히 해외 나가서 히끼꼬모리 하려고 한다.

겪어보니

대운인지 아닌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주기는 있다는 건 체감으로 느낄 뿐이다. 그리고 이런 걸 안다면 힘들 때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마음이 편안해 지니 기계적으로 대응을 하면 된다. 그런데 매일 내가 그리는 건 해외 돌아다니면서 살면서 조지아에서 세금 좀 덜 내면서 살거나, 노을이 멋진 곳에서 지내는 걸 생각해 본다. 그런데 집에서 일 안하고 누워 있는 것도 나쁘지 않긴 하다. 히끼꼬모리도 나쁘지 않긴해.

내 인생 목표

내 수익의 99%는 기부하면 살아보기

내 장례식장에서 펑펑 울어주는 여인들에게 1억원씩 주기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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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全氏家族在韓國歷史中角色的完整歷史分析 第一部分:全氏家族從百濟王國的征途 全氏家族的根源可以追溯到百濟王國的歷史時期。根據互聯網上廣為人知的歷史記載,我們家族的祖先從環城君全葉開始,他是百濟多羅王時代一位高級官員的兒子。這位祖先被派遣到漢朝,擔任表記大將軍的職位。許多世紀之後,在統一新羅時期,這位祖先的後代從唐朝返回。 百濟王國在公元660年被唐朝的入侵摧毀。然而,全氏家族駐紮在百濟本土的勢力繼續努力恢復衰落的王國,直到公元673年,在國家滅亡後堅持抵抗十三年。這些人成為了對故土絕對忠誠的活生生的象徵。在這一時期,他們致力於建立寺廟,並委託製作石佛雕像作為紀念碑,以紀念百濟皇室及其最高官員的記憶。這些奉獻行為的歷史記載以石碑銘文的形式保存至今,最著名的例子是被指定為國家寶物第106號的計有銘全氏佛像。 在正選地區一個名為碧岩寺的寺廟建築群中,即使在現代時代仍然進行著尊崇百濟皇家遺產的正式紀念儀式。這證明了全氏祖先尋求保護的精神和文化遺產即使在王國滅亡1,300年後仍然繼續流傳於歷史之中。這強有力地證實了我們祖先的道德責任感和歷史意識。 在對衰落的百濟王國保持忠誠的時代之後,全氏家族在歷史記載中作為高麗王朝建國的貢獻者出現。在高麗時期服役許多世紀後,全氏家族最終將在李成桂在威化島成功回軍後的時期發揮決定性作用。在這一新朝鮮王朝勝利時刻約四十年後,涉及端宗國王悲劇流放的歷史戲劇將開始展開。 第一-二部分:全循義、世祖和韓明禮的命運同盟 端宗國王的悲劇性罷免過程和世祖(來自王子的位置)奪取王位的過程——這次史稱「計有靖難」的政變——涉及兩位關鍵人物的協同工作。首先是韓明禮,一位傑出的戰略家,從外部指揮行動。其次是全循義,天安全氏家族的醫官,他作為不可或缺的內部人物從宮廷牆壁內促進了陰謀的進行。 宮廷內部的信息網絡 全循義是皇室中排名最高的醫生,監督了世宗國王嚴重疾病的治療,佔據了獲取敏感信息的極其非凡的位置。當世宗國王的健康狀況急劇惡化時,全循義謹慎地將君主的醫療狀況告知王子世祖(未來的世祖),從而為密謀者提供了執行計劃政變所需的精確時間窗口。在端宗即位後,全循義繼續發揮其至關重要的作用,擔任世祖在宮廷內的眼睛和耳朵,收集有關朝代動態的情報,並將關鍵信息傳送回陰謀外部領導層。 與韓明禮的命運同盟 當韓明禮從宮外行使控制,指揮軍事力量並協調政變的戰略層面時,全循義在宮廷內部保持著對宮廷內部運作的絕對控制。韓明禮後來選擇在天安新文面建立墳墓的事實,即天安市全家族擁有強大當地影響力的領土的直接鄰近地區,表明了這兩位傑出人物之間聯盟的持久性。他們之間的戰略夥伴關係代表了韓國歷史上最成功的陰謀之一。 第二部分:計有靖難政變之前天安全氏的地位 高麗王朝的崩潰之後,全氏家族已經適應了新歷史時代的要求。他們具有非凡的實用主義能力,並將自己紮根於具體現實而不是抽象原則。從百濟衰落時期到公元673年,駐紮在天安地區的全氏家族面臨了歷史變化的嚴酷現實。他們意識到生存和繁榮需要適應新環境的能力。他們不會陷入即時道德正當性的觀念中,而是發展了一個強調國家治理實際必要性和有效行政的家族特徵。 這種經過幾代歷史經驗而精煉的實用主義方向,後來將成為精神基礎,在這一基礎上訓舊派(將主導早期朝鮮政府的保守政治黨派)將被建立。全氏家族進行戰略適應和政治現實主義的能力為他們在新王朝中崛起提供了哲學基礎。 第三部分:高麗的兩個全氏家族及其不同的選擇 隨著時間的推移以及高麗時期的展開,原本駐紮在中部地區的全氏家族和在統一新羅時期作為唐朝公主侍從抵達的正選全氏家族維持了家族關係,並且彼此相近地生活。 正選全氏家族的不妥協忠誠之路 在高麗建立的創始時代,當王建擔任軍閥弓裔的從屬將軍時,正選全氏家族的一位成員以絕對的獻身精神跟隨王建。他們共同參與了推翻弓裔政權的大進國統治。這一歷史參與成為了正選全氏家族作為高麗王國建國貢獻者地位的基礎。 然而,當時間推進到公元1392年,李成桂建立朝鮮王朝時,正選全氏家族面臨著將被證明是他們家族歷史上最關鍵時刻的事件。作為對王朝交替的回應,他們發布了一份強有力的宣言:「忠臣不事二君」(不事二君)。為了維持對已故高麗王國的忠誠,他們放棄了官位並退出公務。他們經過開城附近的遁門洞地區,最終在他們位於正選山區的本地地區定居。 這些人在正選山區自願流放的多年裡做了什麼?他們創作詩歌——許多首獻給表達衰落國家深刻悲傷的詩句。這些詩歌表達中最知名的成為了現在稱為正選阿里郎的基礎。著名的歌詞「暗雲聚集在萬壽山」承載了深刻的象徵意義,代表了李成桂派系的上升和新朝鮮秩序的不可逆轉的崛起。隨著時間的推移,這個音樂作品將被聯合國教科文組織認可為人類非物質文化遺產。對於正選全氏家族的後代來說,這遠不止於一個簡單的民俗旋律——它代表了一首神聖的忠誠和廉正之歌,見證了他們家族的深刻道德承諾。 桂峙現的七位賢者 在正選郡的南部地區,存在著一個地名「桂峙現洞」,字面上的意思是「七位有德之士居住的村莊」。在這個有原則的學者社區的中心站著全五倫,他是偉大的儒家哲學家鄭夢周的直接學生。在高麗公民王統治期間,全五倫擔任了集賢殿(皇家學習學院和官方哲學機構)的主任。 每逢月初和月滿,這七個人都會穿上高麗王國的官方服裝,登上周圍的山峰,凝視著他們已失去的故鄉古都開城。站在俯瞰失去故鄉的高度,他們會表達他們的痛苦和絕望。這種定期的哀悼和紀念儀式體現了「不事二君」(只忠誠於一位統治者)的精神,這一精神定義了正選全氏家族對歷史道德要求的處理方式。 第四部分:朝鮮的建立和全氏家族的戰略選擇 然而,在相同的全氏家族血統內,出現了完全不同的道路。當正選全氏選擇通過退出政治來維持對衰落高麗的忠誠時,全氏家族的其他分支做了根本不同的決定。他們選擇擁抱新的朝鮮王朝。這是一個實用主義的選擇,源於自百濟衰落以來塑造家族特徵的歷史生存和適應的教訓。全氏家族具有理解和適應歷史洪流的非凡能力,他們選擇將這一能力用於確保家族在新興朝鮮國家內的地位。 第五部分:電影《與王同住的男人》的時代 在公元1453年10月的夜晚,在首爾市的戲劇性場景中,朝鮮的政治格局在幾小時內得到了改變。這一事件被稱為計有靖難(癸酉靖難),代表了由王子世祖策劃的一次權力政變,他後來將以世祖的名號統治。電影《與王同住的男人》從這一非凡的政治動亂時期汲取其歷史敘事。在這個變革性時刻的中心站著全家族的多位成員,其角色將被證明對決定政變的最終成功絕對至關重要。 第六部分:全氏家族策劃的權力政變 在世祖統治的第一年(1455年),一份官方公告宣佈了被認可為「世祖原從功臣」(世祖時代的世界功臣)的人物名單。這份名冊記錄了所有通過政變和其他方式對世祖上台有貢獻的個人,以及那些通過其服務完成了對皇族和國家義務的人物。這是一份尊敬的文件,記錄了那些塑造了韓國歷史中關鍵轉折點的人物名單。官方源文件可以在《世祖實錄》(世祖年代記)中找到,具體位置為:https://sillok.history.go.kr/id/kga_10112027_003 在這份非凡名冊中列出的人物中,全氏家族的多位成員的名字高度突出出現。 一等功臣:權力的架構師 1. 全循義:從醫生到王冠最親密顧問的轉變 官職等級:上護軍(正三品) 全循義遠不止是擔任這一官職名稱的軍官。他從世宗國王統治到世祖統治時期擔任皇家醫生(御醫)。他被公認為其時代的首席醫學學者,擁有超越其同時代人的醫學和製藥科學知識。 他升格為一等功臣身份的基礎是超出其醫療專業知識範圍的貢獻。在政變的實際執行期間,全循義在維持世祖健康和安全的同時,也管理了宮廷內敏感信息的流動。他貢獻的最關鍵方面涉及維持對皇家居所內發生的所有重大運動和決定的詳細理解。通過謹慎地告知王子世祖世宗國王健康狀況的惡化,全循義為密謀者提供了必要的精確時間窗口,以便密謀者能夠以最高的協調性同步其軍事和政治行動。 用當代政府術語來說,全循義的地位相當於同時擔任總統的私人醫生和總統辦公室首席秘書——這種權力和接觸的集中在任何政治體系中都是極其罕見的。 2. 全光義:控制首都的軍事指揮官 官職等級:上護軍(正三品) 儘管全光義與全循義共享相同的官職名稱,但他的功能角色是完全不同的。當全循義通過醫療專業知識和從宮廷內的情報收集行使影響力時,全光義指揮了部署在整個首爾的實際軍事力量。他在一等功臣名冊上與其他高級軍事指揮官並列的情況表明,他對首都最關鍵防衛單位行使了直接的作戰控制權。 歷史記載表明,在計有靖難期間,全光義個人協調了首爾最精銳軍事編隊的部署,並直接監督了對任何試圖抵抗世祖奪取權力的力量的鎮壓。他被準確地表徵為一位強大的野戰指揮官,其戰術決定和軍事領導被證明對政變的最終成功至關重要。用現代軍事術語來說,他的地位應該相當於首都防衛司令部副司令官或聯合參謀長委員會主席——一個掌握龐大軍事權力和戰略責任的職位。 二等功臣:行動的執行者 3. 全寧壽:宮殿防衛的建築師 官職等級:司直(正五品) 在當代軍事術語中,全寧壽應該被理解為首都防衛司令部內的少校級大隊長。他的職位賦予了他在五衛軍事系統內對一個功能性軍事單位的指揮權,使他直接對皇宮特定部分的安全負責。 4. 全自完:特殊行動指揮官 官職等級:行司正(正七品) 這個人是提問者的直系祖先。他官職名稱前的「行」字的出現具有深刻的歷史意義。在朝鮮官僚術語中,這個前綴表示儘管他的名義等級相對較低,但他實際被分配的責任和權力遠超其官位通常會授予他的範圍。他充當了精銳特種行動部隊的指揮官——本質上相當於當今稱為總統安全保衛部隊的單位指揮官。 在政變的實際夜晚,歷史證據表明全自完將自己置於最戰略上至關重要和危險的位置。他負責強制打開宮禁堡壘內的關鍵大門,管理武裝人員通過關鍵進入點的流動,並為政變領導人提供直接的個人安全保護。在這方面,他充當了一位真實的現場指揮官,其政變夜晚的戰術決定被證明對其成功至關重要。 5. 全繼元和6….

  • [스톡 사진 일기] AI로 태그 노가다 탈출했더니 업로드 제한? (feat. 픽스타)

    안녕하세요! 오늘은 최근 스톡 사진 판매를 하면서 겪은 파란만장한 후기를 공유해보려 합니다. 역시 부업의 길은 멀고도 험하네요. 1. 연간 최고 블로그 리뷰 460개, 산더미처럼 쌓인 사진들 네이버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정말 많은 사진을 찍어왔습니다. 이번에 예전 기록을 들춰보니 코로나 시기 한 해에만 무려 320개의 리뷰를 올렸더라고요. 전 이게 최고 기록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다른 글을 봤더니…

  • 노트북 하나로 세계를 일하며 산다 | 프리랜서 노마드의 AI 시대 삶을 기다리며

    8년 전 태국 호스텔에서 만난 노마드 2018년, 태국 호스텔 라운지에서 한 프랑스 청년을 만났어요. 노트북 하나로 유럽의 인테리어 설계를 하면서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던 사람이었거든요. “너를 왜 자꾸 찾는데?”라고 물었을 때 그가 웃으면서 답했어요. “아마 유럽 스타일을 원하는 거 같아.” 어라, 이게 뭐지? 노트북만으로 대양을 건너 설계를 하다니. 그 옆에는 브라질 여동생도 있었는데, 그녀도 CAD 설계사였어요….

  • Why Did King Sejo Award First-Rank Meritorious Official Status to the Jeon Ancestors?

    A Complete Historical Analysis of the Jeon Clan’s Role in Korean History PART ONE: The Journey of the Jeon Clan from the Baekje Kingdom The roots of the Jeon family trace their origins to the Kingdom of Baekje. According to historical records widely known on the internet, our family’s ancestor, beginning with Hwan-sung-gun Jeon Se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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