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대성팔족, 중국에 얼마나 있을까?
안녕하세요, 백제 온전전씨 십제 개국공신 전섭, 고려 개국공신 전락 삼재공파 후손입니다. 평소 호시심에 딥시크와 제미나이 AI를 이용해서 궁금증을 해결해 봤습니다.
보통 나라가 변하면 아시겠지만, 왕 성이 바뀌는 걸로 백성들은 인식을 했다고 합니다. 백성은 그대로 삶을 살았다고 하죠. 그래서 대성팔족 성씨가 중국에 얼마나 있는지 찾아 봤습니다.
- 沙(사): 중국 내 약 39만~49만 명이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순위로는 216위에서 292위 사이로, 비교적 흔하지 않은 성씨입니다. 주로 산둥성, 헤이룽장성, 랴오닝성 등지에 분포합니다.
- 燕(연): 중국 내 약 26만~29만 명이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성씨 순위는 258위 정도로 희귀한 편이며, 산둥성에 가장 많이 분포합니다.
- 劦/協(협): 매우 희귀한 성씨로, 현재 중국 내 정확한 인구 통계는 확인되지 않습니다. 이 성씨는 백제의 ‘목협(木劦)’ 씨와 연관이 깊은 것으로 보입니다.
- 眞(진): 중국 내 약 5천 명 정도만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초희귀 성씨입니다. 성씨 순위는 892위로, 현재는 주로 중국 북부 지방에 소수 분포합니다.
- 解(해): 중국 내 약 71만 명이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성씨 순위는 182위~193위 정도로, 대성팔족 중에서는 비교적 흔한 편입니다. 산둥성과 허베이성에 많이 분포합니다.
- 國(국): 중국 내 약 20만 명이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백가성》 순위 354위로 흔하지 않은 성씨입니다.
- 木(목): 중국 내 약 9만17만 명이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성씨 순위는 288위447위로, 이 역시 흔치 않은 성씨입니다. 산둥성에 가장 많이 분포합니다.
- 苗(묘): 중국 내 약 100만110만 명이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성씨 순위는 146위157위로, 대성팔족 중에서는 유일하게 비교적 흔한 성씨에 속합니다. 허난성에 가장 많이 분포합니다.
- 苩/葩(백): ‘苩'(pā/bó) 또는 ‘葩'(pā)는 한국의 ‘백(白)’씨와 관련이 깊은 성씨로 여겨집니다. 현재 중국 내에서 이 글자를 성씨로 사용하는 인구는 극히 드물어 정확한 통계가 없습니다.
종합 정리
백제 대성팔족의 성씨들은 현재 중국에 나름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해(解)’씨와 ‘묘(苗)’씨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희귀 내지는 초희귀 성씨입니다.
이는 시간이 지나면서 이들 성씨가 중국 내에서는 세력이 미미해졌거나, 다른 성씨로 변형/흡수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특히 ‘협(劦)’, ‘진(眞)’, ‘백(苩)’씨 등은 현재 중국에서 찾아보기 매우 어려운 성씨입니다.
한편, 이 팔족의 성씨들은 백제 멸망 후 한반도에 그대로 남아 오늘날 한국 성씨의 중요한 뿌리가 되었으며, 이는 곧 한국과 중국의 성씨가 깊은 역사적 연관성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한국에는 얼마나 살고 있을까?(북한은 모름)
| 성씨 | 백제 당시 한자 | 2015년 인구수 (통계청) | 현황 및 특징 |
| 진씨 | 眞 | 1,577명 | 서산 진씨 등을 중심으로 일부 계보 유지. (동음 성씨인 陳씨는 157,599명) |
| 해씨 | 解 | 541명 | 부여·백제 계통의 대표적 희귀 성씨. |
| 국씨 | 國 | 98명 | 희귀 성씨. (동음 성씨인 鞠씨는 20,545명) |
| 목씨 | 木 | 92명 | 사천 목씨를 중심으로 일부 계보 유지. |
| 사씨 | 沙 | 9명 | 소멸 직전의 극희귀 성씨. (동음 성씨인 史씨는 10,724명) |
| 연씨 | 燕 | 20명 미만 | 소멸 직전의 극희귀 성씨. (동음 성씨인 延씨는 34,766명) |
| 협씨 | 協 | 0명 | 현대 대한민국 기준 인구 없음(소멸). |
| 백씨 | 苩 | 0명 (白씨는 383,981명) | 백제 당시 한자인 苩씨는 집계 인원 없음. 현대 백(白)씨는 신라계/고려계 계보가 주류. |
백제 10제 개국공신 후손인 온전 전씨는 한국에 지금 70만명이 거주 중입니다. 그런데 대성팔족은 한반도에 찾아 보기가 힘들죠. 이유가 뭘까요? 저는 이부분이 너무 이상 했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온전 전씨의 유산을 예를 들면, 백제 멸망 후 673년에 세종시에 있는 비암사에서 계유명전씨 불비상이 발견됩니다. 비문 판독으로 보면 백제 부흥 운동을 673년까지 했던 것으로 보이며 비문 내용에는 전씨 가문과 대성팔족 다른 성씨와 함께 전씨 가문에는 달솔도 있는 것으로 판독이 되었습니다. 비암사 보면 완전 산속에 숨어 있습니다.
당시 달솔은 정2품으로 흑치상지 장군이나 계백 장군도 정 2품이었습니다. 그리고 중극 드라마 보시면 아시겠지만, 고관 대작은 식솔에 사병까지 하면 수백이상이 나오는데요. 제가 찾아보면 달솔의 경우 그 휘하가 최대 1200명 정도 까지 된다고 합니다.
저는 백제 멸망 후 도망친 곳이 세종씨라고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래야 위의 내용이 맞아 떨어집니다. 한반도 남부는 백제 본토가 아니었다고 생각 하는 이유가 백제가 멸망 했는데, 백제 땅에 벌 세우고 백제왕과 고관대작, 조상을 위한 부처님 발원 기도를 한다는 게 너무나 위험합니다. 백제 본토 였다면 대성팔족 성씨도 최소 10만 이상은 존재를 해야 할겁니다.
일제 강점기 때 신사 참배 거부 하면 어떻게 되었나요? 제가 나온 대학교는 폐교를 당했습니다. 이성계 시대에 고려 왕과 고관대작 제사 지내는 사당을 지으면 이방원이 살려 뒀을까요? 고려 왕족 다 찾아서 죽이는 시기였습니다.
역사를 보면 대한민국 임시정부, 티베트 달라이 라마를 보면 타국에서 활동을 합니다. 이런 역사적인 근거만으로 봐도 달솔을 직급의 전씨 일가가 도망을 쳤다면 해외겠죠. 그래서 왜 또는 중원 남부에 백제 흔적이 남아있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고대 국가 지배는 점과 선입니다. 교과서 지도로 색으로 칠해서 다 관할 영토라고 보시겠지만 역사 드라마만 봐도 수도만 나와도 왕족이 치안 때문에 죽을 고기를 많이 넘기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이 처럼 영토가 면이 아닙니다. 점과 선으로 인식을 해야 하고, 지금 중국 땅에 인구가 17억이 넘는다고 하나, 한나라 당시 인구가 5천만명 미만이라고 합니다. 한국의 인구수가 하나의 국가입니다. 즉 그 넓은 땅을 다 지배 못합니다. 그냥 산간지역 공터가 무척 많다는 걱고 그렇기에 변방은 지금으로 치면 소도시 국가들이 많았을거라고 생각됩니다.
중국에 있는 대성팔족 성씨가 가장 많이 분포한 곳의 위치
백제 대성팔족 성씨들의 중국 내 주요 분포 지역을 정리해 보면, 대부분 산둥성(山东省)과 그 주변 화북(华北) 지역에 집중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각 성씨별로 가장 많이 분포한 지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 성씨 | 주요 분포 지역 (최대 집중지) |
|---|---|
| 沙 (사) | 산둥성(山东省) / 장쑤성(江苏省) |
| 燕 (연) | 산둥성(山东省) |
| 解 (해) | 산둥성(山东省) 또는 허베이성(河北省) (문헌에 따라 상이) |
| 國 (국) | 산둥성(山东省) |
| 木 (목) | 산둥성(山东省) |
| 苗 (묘) | 허난성(河南省) |
| 協 (협) | 산둥성(山东省) 지난시(济南市) (현재는 매우 희귀) |
| 眞 (진) | 후난성(湖南省), 저장성(浙江省), 푸젠성(福建省) 등 (현재는 매우 희귀) |
주요 특징 분석
- 산둥성(山东省)으로의 집중: 8개 성씨 중 6개(沙, 燕, 國, 木, 協, 解)가 산둥성을 중심으로 분포하고 있습니다. 이는 수천 년에 걸친 인구 이동의 결과로, 이 지역이 이들 성씨의 주요 집거지가 되었음을 보여줍니다.
- 화북(华北) 평원의 연계성: 산둥성을 비롯해 허베이(河北), 허난(河南) 등 화북 평원 일대가 주요 분포지입니다. 이는 고대 중국의 정치·경제 중심지와 맞닿아 있어, 이들 성씨가 역사적으로 중원(中原) 지역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 희귀 성씨의 분산: ‘협(協)’씨와 ‘진(眞)’씨처럼 현재 중국에서 매우 드문 성씨들은 소수의 특정 지역(산둥성 지난, 또는 남부 일부 지역)에만 남아 있어, 그 명맥이 거의 끊어질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 문헌 간 차이: ‘해(解)’씨의 경우, 어떤 자료는 산둥성을, 다른 자료는 허베이성을 첫 번째로 꼽기도 합니다. 이는 통계 시기나 기준의 차이로 보이며, 두 지역 모두 주요 분포지임을 알 수 있습니다.
위의 내용을 보면 역사 학자들은 백제 멸망 때 잡혀간 귀족 1만명의 영향으로 지금 다 중국 땅에 있는 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역사를 보면 민족 대이동이 아닌 이상은 왕이 변화면 지뱅층의 성이 변하는 걸로 인식하고 국민들은 그 땅에 그대로 산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리고 일제 강점기를 보더라도 떠나봐야 국경 밖 만주가 대다수입니다. 민족 대이동으로 중원으로 가지는 않습니다.
백제 대성팔족 성씨의 중국 족보 내 기재 현황
백제 대성팔족 성씨 중 일부는 중국 족보에서 시조를 백제 계통으로 직접 적고 있지만, 모든 성씨가 그런 것은 아닙니다. 대부분의 성씨는 여러 기원 중 하나로 백제 계통을 언급하거나, 시조를 중국 고대 인물로 삼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백제 대성팔족 성씨의 중국 족보 내 기재 현황
| 성씨 | 중국 족보 내 백제 관련 기재 여부 | 상세 내용 |
|---|---|---|
| 沙 (사) | ✅ 있음 (명확) | 중국의 《만성통보(萬姓統譜)》와 《백가성고략(百家姓考略)》에는 “沙氏系出沙隨氏,源于百濟國” (사씨는 사수씨에서 갈라져 나왔으며, 백제국에서 유래했다)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이는 백제계 사씨의 중국 내 기원으로 인정받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
| 燕 (연) | △ 있음 (일부) | 중국의 《성씨심원(姓氏尋源)》과 《고금성씨서변증(古今姓氏書辯證)》 등에서 “唐時百濟大臣八姓,其二曰燕氏” (당나라 때 백제의 여덟 대성 중 둘째가 연씨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만 연씨의 주된 시조는 중국 고대의 연(燕)나라로 보는 경우가 더 일반적입니다. |
| 解 (해) | △ 있음 (일부) | 중국의 《북사(北史)》에는 “百濟國大姓有八族,其五曰解氏” (백제의 대성팔족 중 다섯째가 해씨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해씨의 주류 시조는 중국 고대의 인물로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
| 國 (국) | ✅ 있음 (명확) | 중국 위키백과 등에는 국씨(國姓)가 “백제국의 8대 세습 귀족 성씨 중 하나”라고 명시되어 있으며, “국씨는 백제의 개국 공신의 후예”라고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백제 멸망 후 일부 국씨가 중국으로 건너가 정착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
| 木 (목) | △ 있음 (일부) | 일부 문헌에는 “당나라 때 백제국에 목씨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러나 목씨는 중국의 ‘端木(단목)’ 씨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더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
| 苗 (묘) | △ 있음 (일부) | 묘씨의 기원 중 하나로 “백제(朝鮮古國) 대성에 묘씨가 있다”는 내용이 언급됩니다. 하지만 묘씨의 대표적인 시조는 중국 춘추시대 초나라의 ‘묘분황(苗賁皇)’으로, 이쪽이 주류입니다. |
| 協 (협) / 劦 | ❓ 불명확 | ‘협(協)’ 또는 ‘劦(협)’씨는 한국의 ‘목협(木劦)’ 씨와 연관된 복성(複姓)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현재 중국 내에서 이 성씨를 가진 인구는 극히 드물고, 족보가 어떻게 기록되어 있는지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
| 眞 (진) | ❓ 불명확 | 진(眞)씨는 백제의 대성팔족 중 하나로 기록되어 있지만, 중국 내에서는 매우 희귀한 성씨입니다. 족보에서 백제 계통을 명시적으로 언급하는지에 대한 정보는 부족합니다. |
종합 정리
- 백제 계통을 명확히 기록한 성씨: 사(沙)씨와 국(國)씨는 중국의 주요 성씨 문헌이나 족보에서 시조가 백제에서 유래했다는 내용을 비교적 명확하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 백제 계통을 일부 언급한 성씨: 연(燕)씨, 해(解)씨, 목(木)씨, 묘(苗)씨는 백제 대성팔족 중 하나라는 기록이 남아 있지만, 이들이 중국 내에서 주류를 이루는 시조 계보는 대개 중국 고대의 인물이나 국가로 연결됩니다.
- 정보가 부족한 성씨: 협(協)씨와 진(眞)씨는 중국 내에서 그 수가 매우 적어, 족보가 어떻게 전승되고 있는지 확인하기 어려운 실정입니다.
결국, ‘대성팔족’이 중국 역사서(《수서》 등)에 기록된 영향으로, 이들 성씨의 기원을 설명할 때 백제 계통이 함께 언급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모든 성씨의 족보가 시조를 백제의 특정 인물로 모시고 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대부분의 성씨는 여러 갈래의 기원을 가진 복합적인 성씨이며, 그중 한 갈래가 백제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