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하영에겐 분노하면서 ‘친일 삼성에는 왜 인지부조화가 올까?
최근 배우 하영이 예능 방송에서 ‘4대째 의사 집안’을 자랑했다가 증조부(안상호)의 일제강점기 행적(대정친목회, 매일신보 인터뷰 등)이 드러나 거센 비난과 악플을 받는 반면, 훨씬 더 거대한 친일 인프라와 재벌 자본을 형성한 삼성가의 친일·정경유착 역사에는 대중이 관대하거나 침묵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이러한 이중적 태도는 다음과 같은 심리학적·사회학적 원인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1. 심리적 접근성과 ‘타격 가능성’ (Parasocial Punishment)
- 연예인(개인): 배우는 SNS나 댓글창을 통해 일반인이 직접 도덕적 단죄를 내릴 수 있는 ‘손쉬운 대상’입니다. 대중은 자신의 댓글 하나로 연예인의 커리어에 영향(사과문 발표, 방송 하차 등)을 줄 수 있다는 ‘가짜 효능감’을 느낍니다.
- 거대 재벌(시스템): 삼성은 개인이 댓글 몇 개로 흔들 수 없는 방대한 공룡 조직입니다. 대중은 무의식적으로 ‘내가 비난해 봤자 바뀔 것이 없다’는 학습된 무기력을 느끼며 무의식적으로 공격을 포기합니다.
2. 시스템 의존성과 인지 부조화 (Systemic Dependency)
- 일상화된 자본 의존: 한국인 다수는 삼성의 스마트폰, 가전제품, 아파트, 주식, 일자리 등 삼성 자본 체계 안에서 살아갑니다.
- 인지 부조화 회피: 내가 매일 사용하고 의지하는 기업을 ‘친일파가 기틀을 놓은 정경유착의 산물’로 맹렬히 비판하는 것은 자기모순(인지 부조화)을 일으킵니다. 따라서 대중은 삼성의 역사적 비리는 현실적 필요성에 의해 감싸거나 외면하면서, 나와 아무런利害(이해)관계가 없는 연예인에게 비난을 집중시킵니다.
3. ‘자랑’이 불러온 도덕적 분노와 공정성 자극
- 미화와 자랑에 대한 반발: 대중이 하영에게 크게 분노한 결정적 계기는 친일 행적 자체보다 “지상파 방송에 나와 친일 자본으로 구축된 집안의 부와 특권을 ‘명문가’로 미화하고 자랑했다”는 점입니다. 이는 대중의 상대적 박탈감과 공정성 민감도를 강력하게 자극했습니다.
- 삼성의 정당화 전략: 반면 삼성은 과거 친일 행적을 방송에서 사적으로 자랑하지 않습니다. 대신 ‘국위선언’, ‘국가 경제 기여’라는 거대한 서사 뒤로 은폐하기 때문에 대중이 직관적인 반발심을 느끼기 어렵습니다.
4. 비용 없는 정의감 표출 (Costless Moral Superiority)
- 연예인 비판: 연예인을 비판하는 것은 비용이 전혀 들지 않으며, 스스로 ‘역사의식이 바른 사람’이라는 도덕적 우월감을 손쉽게 얻을 수 있습니다.
- 재벌 구조 비판: 거대 기득권 구조나 정경유착 체제를 비판하고 바꾸는 것은 현실적인 불이익이나 사회적 비용을 감수해야 하므로 대중은 더 쉽고 안전한 표적(연예인)을 선택합니다.
삼성의 기획자 홍진기 판사는 누구인가?

일제 강점기 전주지방법원 판사 시절
1. 가난했던 고시생, 어떻게 법조 엘리트가 되었나?
홍진기(1917~1986)
일제 강점기 판사를 거쳐, 대한민국 법무부·내무부 장관의 시작이 처음부터 거대 재벌이나 유력 가문의 후원으로 출발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 어머니의 하숙집 헌신: 홍진기의 아버지는 가난한 하급 관리 출신이었습니다. 1934년 홍진기가 경성제국대학 예과에 입학하자, 그의 어머니는 남은 가산을 정리하고 서울 청량리로 올라와 하숙집을 운영했습니다. 시골 수재들을 하숙치며 번 돈으로 홍진기의 학비와 도쿄 시험 응시 경비를 대었습니다.
- 경성제대 조수 급여로 자금 마련: 1940년 경성제대 법학과를 졸업한 홍진기는 지도교수의 배려로 법문학부 조수(助手)로 채용되었습니다. 당시 조선인으로서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으며, 조수로 재직하며 받은 정기적인 월급과 수당으로 일본 도쿄를 오가며 고등문관시험(사법과)을 준비해 1941년 최종 합격했습니다.
- 일제 말기 사법관 재직: 1942년부터 해방 직전까지 전주지방법원 판사 등으로 재직했습니다. 일제 말기 사법관 재직 이력으로 인해 훗날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사법 부문에 등재되었습니다.
2. 권력의 핵심에서 삼성과의 결합까지
해방 후 홍진기는 이승만 정권에서 법무부 차관, 법무부 장관, 내무부 장관 등 요직을 두루 거쳤습니다.
- 권력의 주역: 법무장관 시절 조봉암 선생의 사형 집행 서명과 경향신문 강제 폐간을 주도했고, 내무장관 시절 3·15 부정선거와 4·19 혁명 당시 시위대 발포 명령 책임으로 5·16 군사정변 이후 사형 선고를 받았습니다.
- 삼성과의 결합: 광복절 특사로 풀려난 홍진기는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적극적인 후원을 받아 동양방송 사장과 중앙일보 종신 회장으로 재기하며 언론·자본 권력의 거물로 부활했습니다.
3. 거대 친일·재벌 혼맥: 김신석 중추원 참의와 삼성가의 만남
홍진기의 자본·권력 네트워크는 고시 합격 이후 친일 유력 가문과의 결합을 통해 완벽해졌습니다.

- 장인 김신석(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 홍진기는 판사 임용 무렵(1943년), 호남은행 전무와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낸 유력 재력가 김신석의 딸 김윤남과 결혼했습니다.
나무위키 기록에는 1933년 광주국방의회 부회장을 역임하던 중 관선으로 전라남도 도회의원에 임명되었다. 같은 해 전라남도 도회 부의장을 역임하는 한편, 조선신궁봉찬회 발기인 및 평의원과 고문으로도 활동하였다. - 1936년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에 임명되었고 태평양 전쟁 중에는 대화동맹에 가담하였다.(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 시절에 그의 하인과 시녀가 6백여 명에 달했다고 한다.)
- 대화동맹(大和同盟)은 일제강점기 말기인 1945년에 경성부에서 결성된 단체이다. 태평양 전쟁 막바지에 ‘미영격멸’, ‘내선단결’, ‘성전필승’을 내걸고 출범하여 강한 친일색을 보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조직이 자발적으로 일본을 돕는 조직이었다는 것이다.
-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 중 중추원 부문, 2008년 공개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중추원, 경제, 친일단체 부문에 선정되었다. 민족문제연구소의 명단에는 사위 홍진기도 들어 있다.
- 삼성가와의 대형 혼맥: 홍진기와 김신석의 결합으로 태어난 장녀 홍라희 여사가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과 결혼하면서 ‘친일 사법관(홍진기) + 중추원 참의(김신석) + 거대 재벌(삼성)’으로 이어지는 강력한 혼맥이 완성되었습니다.
대화동맹은 어떤 단체인가?
이런 단체에서 활동 했다고 하면 현대 사람들은 전혀 감을 못 잡으시더라고요. 제가 직접 신문에서 찾아 봤습니다.

매일신보 [ 每日申報 ] 每日新報社1945년 02월 05일
사설: 대화동맹(大和同盟)의 결성
[I] 2월 17일 경성에서 대화동맹 결성대회가 열린 것은 황국(皇國)의 흥망을 결정짓는 결전에 임하여, 조선 동포의 총력을 단결·결집하고 대화민족(大和民族)으로서의 적성을 발휘하며 내선일체(內鮮一體)의 완성을 도모하기 위한 대동단결의 조직이다.
결전으로 치닫는 현 상황 아래에서 조선 동포의 주체가 합심하여 대화민족으로서의 체제를 확립하고 강력한 결전 기틀을 마련하고자 하는 거국적 움직임은 결전 진영에 큰 힘을 보태는 일이다.
[II] 조선 동포의 황국신민으로서의 의무 이행은 이미 증명된 바 있다. 그러나 결전 시국에서 다해야 할 의무는 단순한 개인의 이무를 넘어 대화민족으로서의 확고한 각오를 가지는 데서 비롯된다. 대화민족으로서의 각오를 바탕으로 총력을 다해 국가 재조(再造)의 대업을 완수해야 한다.
[III] 오늘날 우리가 맞이한 시대는 모든 역량을 쏟아부어야 하는 총력전의 시대이다. 조선 동포의 잠재적 역량을 끌어내고 강력한 지도력을 바탕으로 대화동맹을 결성한 것은 국난을 극복하고 제국(日本)의 전력을 강화하는 중요한 발판이 될 것이다.
[IV] 결전 체제 확립: 대화동맹은 2,600만 조선 동포를 하나로 결속시키는 중심체로서 그 책무를 다해야 한다. 대동단결 및 실천: 전 동포가 일체감을 바탕으로 대동단결하여 대동아 전쟁 완수와 공영권 건설이라는 신념을 행동으로 실천해 나가야 한다.
대화동맹(大和同盟) 추진위원 결정 및 실행 지침 기사


하여 맹세하고 전쟁 목적의 완수에 힘쓸 것을 기하고 있다고 발표한 다음, 백작 임생(壬生)·시마즈(島津)·히노(日野) 등과의 긴밀한 연락 도모 외 6개 항목을 상정하여 위원회에서 심의한 결과 대략 결정하고 오후 3시 20분에 산회하였다.
[실행 지침]
- 1. 백작 등 주요 인사들과의 긴밀한 연락을 도모하여 집행함.(이 단체에는 작위 받은 조선인은 없습니다.(배우 하영 친일 조상이 활동하던 단체에는 자작이 있습니다.)
- 2. 신분과 직업의 구별에 구애받지 않고 명망 높은 인사를 전국적으로 포섭하여 실천 운동의 추진력으로 삼음.
- 3. 각 방면에서 제안된 사항은 심의회 및 이사회에 부의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사항은 이를 실행에 옮김.
[추진위원 결정] 대화동맹에서는 11일 부청(府廳) 제1회의실에서 회의를 개최하고, 1944~1945년(昭和 19·20년)도 전시의 구체적 실천 방법 및 내외 중견 위원을 중심으로 추진위원 50명을 결정하였다.
대화동맹 임원 명단 (役員氏名)
이사장 (理事長)
- 伊東敎昊 (이토 교코 / 윤치호)
이사 (理事)
- 賽峯 (사이봉)
- 渡邊海日子 (와타나베 카이짓코)
- 金川星 (카나가와 세이 / 김천성)
- 朴春… (박춘… / 박춘금)
- 山光郞 (야마미츠로)
- 橫溝光暉 (요코미조 미츠테루)
- 孫永祿 (손영록 / 손영목)
- 夏… (하…)
- 山茂 (야마시게)
- 山田恩次 (야마다 온지)
- 鰺坂喜敏 (아지사카 요시토시)
- 姜… (강…)
- 柄顔 (헤이가오)
- 杉山茂 (스기야마 시게루)
심의원 (審議員)
- 林川東植 (임천동식)
- 堀正一 (호리 쇼이치)
- 朴寅植 (박인식)
- 鄭元機 (정원기)
- 相富… (아이사토…)
- 永文一 (영문일)
- 李家源甫 (이가원보)
- 李忠榮 (이충영)
- 大山… (오오야마…)
- 晃 (아키라)
- 金本東進 (김본동진)
- 片岡勉 (카타오카 쓰토무)
- 谷… (타니…)
- 喜一 (희일)
- 倉茂周藏 (쿠라모치 슈조)
- 草本容基 (쿠사모토 용기)
- 松本… (마츠모토…)
- 本誠 (본성)
- 丸山隆進 (마루야마 다카노부)
- 松村紘一 (마츠무라 코이치)
- 田… (타…)
- 川常次郞 (카와 츠네지로)
- 畠元勳 (밭원훈 / 하타 모토이소)
- 洪承均 (홍승균)
- 芥… (아쿠타…)
- 川浩 (카와 히로시)
- 橋村升雨 (하시무라 승우)
- 金恩濟 (김은제)
- 金信… (김신… / 김신석)
- 鍋 (나베)
- 金晨鎭 (김신진)
- 湯村長二郞 (유무라 초지로)
- 三州… (미슈…)
- 薄用 (박용)
- 白山靑樹 (시라야마 세이쥬)
- 嚴義和 (엄의화)
대화동맹은 1945년 일제가 침략 전쟁에 한국인을 강제 동원하기 위해 만든 관제 단체이므로 명단에 포함된 조선인 참여자 대다수가 《친일인명사전》 등에 수록된 친일반민족행위자입니다.
- 윤치호 (명단상 伊東敎昊 / 이토 교코 – 이사장): 중추원 참의 및 귀족원 의원. 학병·징병 선전 활동과 시국 강연을 주도한 대표적 친일 인사.
- 박춘금 (朴春琴 – 이사): 조선인 최초 일본 중의원(하원) 의원. 대의당 등 친일 단체를 조직하고 청년들의 전쟁 동원을 주도.
- 손영목 (孫永祿/孫永穆 – 이사): 강원도·전라북도 지사 출신. 대화동맹 조직을 실질적으로 이끌며 징병 및 물자 공출 독려.
- 홍승균 (洪承均 – 심의원): 충청북도·전라북도 지사 역임. 총독부 고위 관료로서 전시 총동원 체제 구축에 협력.
- 이원보 (李家源甫 / 이가원보 – 심의원): 경기도 경찰부장, 중추원 참의 역임. 대표적인 친일 경찰 및 행정 관료.
- 엄원훈 (畠元勳 / 하타 모토이소 – 심의원): 중추원 참의 역임. 전시 수탈 및 황국신민화 운동 협력.
- 김신석 (金信錫 / 명단상 金信… – 심의원): 조선식산은행 이사, 중추원 참의 역임. 전시 금융 지원 및 경제 수탈 협력.
- 박인식 (朴寅植 – 심의원): 중추원 참의 및 대지주. 국방헌금 납부 및 전시 동원 사업 지원.
- 이충영 (李忠榮 – 심의원): 판사·변호사 출신의 법조인. 중추원 참의 및 친일 사상 단체 활동.
4. ‘삼성 공화국’ 구축과 현대 국정농단까지의 연계
이러한 삼각 동맹은 언론, 검찰, 재계를 아우르는 ‘삼성 공화국’의 기틀이 되었습니다.
| 주요 영역 | 정경유착 및 권력 구축 내용 |
| 언론·자본 결합 | 중앙일보와 동양방송을 통해 삼성 자본을 방어하는 언론 방패막 형성 |
| 권력 네트워크 | 장남 홍석현(중앙일보 회장·주미대사), 차남 홍석조(전 광주고검장·BGF리테일 회장) 등 자녀들의 요직 진출 *홍석조 회장이 이끄는 BGF리테일은 전국 단위 가맹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대한민국 대표 편의점 브랜드인 ‘CU’를 운영하는 핵심 유통 기업 |
| 사건 및 파장 | 2005년 삼성 X파일 사건: 안기부 도청 파일로 삼성의 대선 자금 및 검찰 로비(떡값 검사) 정황 폭로. 돈 전달책으로 지목된 홍석조 전 고검장은 의혹을 강하게 부인(소명)했으나 사회적 비판 끝에 사퇴. 2016년 국정농단: 무리한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빚어진 재벌과 정권의 대가성 거래 파문 |
연좌제를 넘어 구조적 성찰로 들여다 봐야 할 때
친일 잔재 청산 실패는 단순히 개인의 족보를 파헤쳐 비난하는 ‘연좌제적 공격’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한 연예인의 무지한 집안 자랑에는 분노하면서, 정작 우리 사회의 부와 권력을 지배해 온 거대 자본과 사법·언론 기득권의 친일 뿌리에는 침묵하는 대중 심리를 돌아볼 때입니다. 참된 역사 청산은 개인이 아닌, 청산되지 않은 권력이 어떻게 현대의 정경유착 체제로 고착화되었는지 그 구조와 시스템을 성찰하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